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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난 알파걸이라는 최면에 걸렸었다

by 헬로애니 2023. 2. 8.

장손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면

우리 아빠는 집안의 장손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자마자 대한민국 장손의 장녀가 되었다. 그 막중한 임무를 띄고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난 돌이었다. 모든 것이 궁금했다. 왜 외가댁은 세 고모들이 우리 집에 오는 걸 보고 가야 하는지, 왜 명절만 되면 나는 엄마와 장보고 요리를 해야 하는지, 왜 어린 동생과 친척동생이 있는데 내가 수저를 놓아야 하는지, 왜 나는 내 남동생처럼 어른들이 앉아 있는 큰 상에 앉지 못하는지, 왜 남자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먹기만 하는지 특히 왜 외가는 외가이고 친가는 친가인지 등이다. 아! 속앓이는 없었다. 다행히 난 아빠에게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물어보았고 혼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남동생은 그 싸한 분위기가 싫어 알아서 많은 일들을 거들고 어른들 상에만 올라가던 특상품들을 나에게 주었다(이런 나의 노력으로 지금은 한 가정의 훌륭한 가장이 되었다.). 만약에 내가 다 참고 견뎠다면 아마 “82년생 김지영” 속 주인공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때부터 남자도 하면 여자도 할 수 있고, 소위 말하는 알파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 언젠가 남녀공학이던 중학교를 다니던 나는 남자 애들과 치고 박고 싸워서 담임 선생님이 내 양 볼을 손으로 연신 쓸어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진짜 왜 그러니...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그래…”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사고는 자라온 환경에 의해 점점 강해졌다.

우리 오빠를 만나고 나서

나는 만 27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다들 의아해 했다. 나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오빠를 따르고 이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장남의 장녀로 태어나 무수한 편견을 깬 깨어 있는 알파걸이 아닌가. 결혼식은 반반으로 진행되었고, 신부대기실을 없애고 부모님과 함께 손님들을 맞았다. 집안일은 역할을 정하진 않았지만 할 때 같이 하고 요리는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한 번은 오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오빠, 내가 가부장적인 사람이랑 결혼했음 어땠을까?” 오빠는 이렇게 답했다. “애니야, 가정이 틀렸어. 애니는 가부장적인 사람은 못 만났을걸.” 우문현답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나를 통제하려고 들거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시도가 보이면 나는 심하게 날이 선다. 그러나 우리 오빠의 경우, 모든 대립의 상황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였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또한 누군가 어설프게 뭔가를 하고 있으면, 당연히 나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절대로 오빠는 내가 하겠다고 하는 것들을 빼앗아서 하지 않고 내가 해 볼 때까지 다 해보고 결국에 도와달라 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다 끝내 놓고 놀리긴 한다.)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이다. 이렇게 근 3년의 연애와 결혼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 속의 알파걸은 점점 야들야들 해져갔다. 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내가 몸소 체험하지 않았는가. 결혼 생활 근 7년 만에 오빠를 보는데 “오빠를 아끼고 가꿔주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요리도 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참고 기다려 주신 우리 어머님께 소소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렇게 남편이 좋으면, 남편을 낳아준 시어머니에게 자동으로 감사 인사가 나온다.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요즘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남/여가 첨예하게 갈리는 의견을 놓고 바득바득 싸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남자와 여자의 물리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대화하면 해결책은 반드시 나온다. 우리는 서로 싸워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결국 우린 이 나라에서 같이 살아야 하는 한 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 나의 생각은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서 변하기도 하기에 유연한 사고는 필수다. 이기려 하는 것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낫다. 이기면 적이 생기지만 현명하면 내 편이 생긴다. 나 스스로가 중요한 만큼 상대방도 상대방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렸을 때 이런 다각적인 사고를 할 줄 알았다면 가족들과 있었을 땐 아빠 기도 살려주고 학교에서는 남자 애들과 대립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동생이 해준 말이 있다. 강아지가 물에 있는 물고기를 보고 힘들어 보여서 물에서 써내 주었다고 한다. 강아지는 물고기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했던 행동이 결국 물고기를 죽게 한 행동이 되었다. 내가 처한 상황과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내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말보다는 들으려고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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