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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층간 소음 대화로 해결 하는 방법

by 헬로애니 2023. 1. 29.

조상님의 힌트

우리 집 윗집에는 3살 터울의 아이들이 산다. 한창 부동산 열풍이 불었던 2020년 4월 이사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사실 집을 보러 갔을 때 세입자는 층간 소음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을 심히 좋아하는 나는 “아이들은, 원래 뛰면서 자라는 거죠”라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이것이 조상님의 힌트였는데 왜 흘려보냈을까? 인테리어 공사 중간 점검을 하러 갔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이들은 거실부터 주방까지 “도도도도”를 넘어선 “우다다다다다”를 연발했었다. 인테리어 소장님께 공사가 마무리되고 가구가 들어오면 소리가 줄어드는지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 소리는 지속될 것이라는 대답에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남편이랑 나는 살면서 층간 소음을 겪어보지 못한 터라 소장님의 말을 흘려 들었다. 입주 후 말 그대로 악몽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저녁에 편히 쉴 수조차 없었다. 온갖 신경은 천장에 있었다. 심지어 저녁시간이 고통스러웠다. 4월에 입주를 한 첫날부터 약 10일 동안은 매일매일 관리실에 연락을 요청드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래도 개선이 되는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또 하나 나를 괴롭히던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건조기 소리였다. 새벽 1시가 넘어도 돌아가던 건조기. 건조기가 돌아가는 진동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와 집안 전체를 울려 댔다. 한 번 가동되면 2-3시간은 돌아가는 건조기가 집안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나를 너무 괴롭혔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윗집에 직접 연락을 해도 되는지 관리실을 통해 확인 요청을 드렸다.

그럼 우리 애들은 어디에서 뛰나요

윗집에 직접 연락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인터폰으로 바로 연락드리기 시작했다. 첫 마디가 남편분께서 해외에 다녀오셔서 현재 3주 격리 중에 있으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준비했던 모든 말들을 할 수가 없었다. 24평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3주 동안 집안에만 있는다고 생각해 보자.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동안 “우다다다다다” 뛰었던 것들이 이해가 갔다. 간단히 우리 집이 비어 있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을 알려 드렸다. 직접 통화하니 마음이 한껏 가벼워진 느낌도 들었었다. 다행히 소리가 힘들 때마다 전화 달라고 하셔서 오전 11시, 저녁 8시, 저녁 10시 등 30분 이상 소리가 지속되면 전화를 드렸다. 결국 하루 걸러 한 번씩 전화를 드리게 되었고 윗집에서 “그럼 우리 애들은 어디에서 뛰나요”라고 불만을 터트리셨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집에서 잠만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난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윗집은 우리가 이사 오기 전 거의 10년을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층간 소음 유발자가 된 것이다. 전세도 아니고 매매로 들어온 집에서 이웃과 얼굴을 붉힐 순 없었다. 정중히 대면 대화 요청을 했고 우린 만났다. 윗집 사장님과 우리 부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린 층간 소음 양말을 준비해서 드렸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윗집에서는 우리 집이 비어있는 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지 요청하셨고 우린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였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힘: 대화

윗집 언니와 나는 카톡으로 대화를 한다. 역시 대화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힘이 있다. 층간 소음 매트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았고 다행히 주변 지인이 쓰던 매트에 새 커버를 씌워 전달했다. 우리 집 전체를 울리게 하던 건조기 진동 흡수 매트도 전달했다. 평일에 재택근무를 하기에 윗집에서 많은 신경을 쓰셨을 것 같아 주말에 꼭 외출을 했다. 혹여 아이들이 방학이거나 아프거나 할 때 미리 말씀 주셔서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근무했다. 또 아이들이 엄마의 말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인터폰으로 연락드릴 때는 꼭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직접 주의를 주었다. 난 성인군자는 아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레고를 밟고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더 심한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순수한 아이들과 직접 대화했을 때 훨씬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저녁시간에 윗집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연락했다. 둘째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층간 소음으로 전화했는데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인터폰을 끊고 우리는 연신 “그럴 수 있지, 새 장난감 생겼으면 놀아야지” 하고 웃었다. 층간 소음은 견디기 힘들지만 역시 아이들은 순수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아파트 잘 못 지은 어른들 탓이지.

배려, 감사, 이해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 벌써 내년이면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내가 키운 아이들은 아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이제 제법 몸집도 커져서 뛰지 않고 걸어 다닌다. 큰 몸집으로 소파에서 쿵 뛰어내릴 땐 내 마음도 같이 철렁 내려앉지만 이제는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도 간다. 둘이 싸우는구나, 엄마한테 혼나겠구나, 넘어졌구나, 등등. 우리가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윗집 언니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해주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윗집 아이들은 밤 11시에 깨어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층간 소음으로 너무 힘들 때 전화하면 받아주는 윗집이 있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나중에 우리 집에 아이가 생겨 내가 층간 소음을 유발할 때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 꼭 윗집 언니처럼 배려, 감사, 이해하며 지혜롭게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누군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작전을 쓸 것이다. 심지어 경찰에 신고해서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에 폭력적인 방법을 쓰기 전에 성숙한 어른들이라면 부드러운 대화를 시도해 보길 권한다. 이 글을 쓰는 일요일 아침에 윗집 아이들은 자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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